실제 연구 현장이 아닌 연출 이미지입니다. 이미지 제작에는 AI가 사용되었습니다.
같은 커피 두 잔이 앞에 있다고 상상해 보자. 한쪽에는 2천 원, 다른 쪽에는 8천 원이라고 적혀 있다. 아직 마시지도 않았는데 비싼 쪽이 조금 더 향긋할 것 같다. 원두가 다르겠지, 뭔가 이유가 있겠지 싶다. 이 가격은 설명을 위한 가정이다.
그런데 눈을 감고 마셔도 비싼 쪽이 더 맛있을까?
‘사람은 가격표에 속는다’는 결말을 예상했다면, 커피를 다룬 한 연구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높은 가격이 기대를 끌어올리는 것과 실제로 더 맛있게 느끼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커피에 다른 가격을 붙여봤다
2023년 발표된 Kurz·Efendić·Goukens의 연구는 음악·미술·커피를 다룬 여섯 실험을 담았다. 이 중 커피 실험에는 대학생 236명이 참여했다.
연구진은 아이스커피를 제공하면서 가격 정보를 세 가지로 나눴다. 가격을 알려주지 않거나, 0.99유로 또는 5.99유로라고 안내했다. 커피 자체도 일반 커피와 식초를 소량 넣은 커피로 구분했다. 가격 안내와 실제 내용물을 따로 바꿔본 것이다.
마시기 전에는 비싸다고 들은 쪽의 맛과 품질 기대가 높았다. 하지만 마신 뒤에는 전체 가격 집단 간 맛 선호도와 품질 평가에서 통계적으로 뚜렷한 차이가 없었다. 반면 식초가 들어간 커피는 더 낮은 평가를 받았다. 자세한 방법과 결과는 논문의 커피 실험 항목에 나와 있다.
기대는 올라갔지만, 맛까지 따라오지는 않았다
메뉴판 앞에서 하는 생각과 잔을 내려놓으며 하는 생각을 나눠보면 쉽다.
| 마시기 전의 질문 | 마신 뒤의 질문 |
|---|---|
| 이 가격이면 얼마나 맛있을까? | 방금 마신 맛이 내게 좋았나? |
| 좋은 커피일 것 같은가? | 한 잔 더 마시고 싶은가? |
앞의 질문에는 아직 맛의 기억이 없다. 가격을 보고 기대부터 해볼 수밖에 없다. 뒤의 질문에는 내가 방금 마신 한 모금이 들어 있다. 비싸다는 설명을 들었어도 “그런데 나는 별로인데”라고 생각할 여지가 생긴다.
다만 연구 결과를 ‘가격은 아무 영향도 없다’로 바꾸면 곤란하다. 일반 커피의 고가·저가 집단을 따로 비교한 탐색적 분석에서는 품질 평가 차이가 있었지만, 맛 선호도 차이는 뚜렷하지 않았다. 맛 선호와 품질 평가는 다른 지표다. 연구진은 논문의 논의 부분에서 가격이 경험 이후의 평가를 일관되게 바꾸지는 않았다고 설명한다. 대학생의 아이스커피 실험을 모든 카페와 손님에게 적용할 수도 없다.
이 정도로 읽는 게 적당하다. 가격표의 힘을 무시할 필요도 없지만, 내 입맛을 처음부터 못 믿을 이유도 없다.
비싼 커피를 좋아하면 허세일까?
이 실험으로는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실제 매장에서 파는 싼 커피와 비싼 커피의 우열을 가린 시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어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해보자.
“커피도 괜찮지만, 여기 앉아 있는 시간이 좋다.”
그렇다면 내가 돈을 내는 대상에는 자리와 시간도 들어 있다. 조용한 테이블에서 책을 읽으려고 간 날과, 출근길에 한 잔 들고 나오려는 날의 선택이 같을 필요는 없다. 이건 연구가 정해주는 정답이 아니라, 내 소비를 설명하는 방법이다.
맛은 잘 모르겠는데 공간은 좋았다면 그렇게 말하면 된다. 반대로 이름난 원두라는데 내게는 너무 시다면, 억지로 감탄할 필요도 없다. ‘좋은 커피라고 들었다’와 ‘내가 좋아하는 커피다’는 서로 다른 말이다.
비싸게 샀다는 이유로 맛있었다고 우길 필요가 없듯, 맛있게 마신 커피를 나중에 싸다고 알게 됐다고 해서 평가를 깎을 필요도 없다.
내 취향이 궁금하면 가격을 잠깐 가려보자
연구를 재현하자는 뜻은 아니다. 다음에 커피를 고를 때 쓸 작은 취향 메모 정도면 충분하다.
친구와 서로 다른 커피를 골라, 어디서 샀고 얼마인지 듣기 전에 맛부터 적어보자. 가능하면 비슷한 온도에서 같은 모양의 잔에 조금씩 덜어 마신다. 원두와 추출 방식이 다른 만큼, 결과를 가격의 효과라고 해석할 수는 없다. 목적은 비싼 것을 맞히는 게 아니라 설명을 듣기 전 내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남기는 것이다.
전문가처럼 과일 이름을 찾아내지 않아도 된다. ‘너무 쓰다’, ‘신맛이 편하다’, ‘물처럼 연하다’, ‘이쪽을 더 마시고 싶다’면 충분하다. 점수를 매기는 게 귀찮다면 다시 사고 싶은 잔 하나만 고른다.
그다음 가격을 보고 질문을 바꿔보자. 어느 쪽이 더 비싼지가 아니라, 내가 느낀 차이에 이 돈을 더 내고 싶은지다. 비싼 쪽이 더 좋았다면 그 취향을 알게 된 것이고, 싼 쪽이 좋았다면 다음 주문이 쉬워진 셈이다.
가격표는 봐도, 감상까지 맡기지는 말자
커피 한 잔을 마실 때마다 실험할 필요는 없다. 단골집에서 늘 먹던 것을 주문하고, 가끔 궁금한 커피를 마시는 정도도 충분히 즐겁다.
다만 한 잔을 다 마신 뒤에는 가격과 별개로 짧게 물어볼 만하다. “그래서, 나는 이 맛을 또 찾을까?”
그 대답이 메뉴판의 숫자보다 다음 커피를 고르는 데 쓸모가 있을 것이다.
연구 원문을 바탕으로 쓴 소비 이야기다. 필자가 직접 실험한 체험담은 아니며, 도입의 원화 가격과 취향 메모는 설명을 위한 예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