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윤은 장래희망 칸에 공무원이라고 썼다가 지웠다. 글씨가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 종이를 기울이면 눌린 자국이 보였다. 옆자리에서는 이미 조사서를 반으로 접고 있었다. 아직 안 냈어? 친구가 물었다. 도윤은 다른 항목을 보는 척했다. 취미, 특기, 관심 있는 과목. 그 칸들도 아주 쉽지는 않았지만 장래희망보다는 나았다. 취미는 바뀌어도 될 것 같았다. 장래희망은 한 번 쓰면 누군가 오래 기억할 것 같았다.
공무원이 싫어서 지운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일이 꾸준하고 생활을 계획할 수 있는 직업이면 좋겠다고 했다. 도윤도 월급이 일정하게 들어오는 생활을 상상하면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그 직업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설명해 보라고 하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어느 부서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보다 주변 어른들이 그 말을 들었을 때 고개를 끄덕이던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가방 안에는 다른 신청서가 있었다. 학교 축제 무대 준비를 도울 학생을 찾는 종이였다. 도윤은 며칠 전 그 종이에 이름을 썼다. 공연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앞에 나가면 목소리가 작아졌다. 다만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 조명이 바뀌고, 뒤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자기 차례에 맞춰 움직이는 것이 궁금했다. 누가 그 순서를 알고 있는지, 어떻게 틀리지 않고 맞추는지 한번 보고 싶었다.
두 종이를 나란히 놓으니 서로 다른 사람이 쓴 것 같았다. 진로 조사서에는 안정적인 직업을 적으려 했고, 다른 종이에는 아직 잘 모르는 일을 해 보겠다고 이름을 남겼다. 도윤은 그 차이가 자기 생각이 없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진짜 원하는 것이 있으면 두 종이에 같은 답이 나와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한쪽은 앞으로의 생계를 묻고 있었고 다른 쪽은 이번 주 수요일 오후를 묻고 있었다. 질문의 크기부터 달랐다.
AI 이미지직업 이름 하나로는 다 적히지 않는 나
조사서를 걷던 선생님은 도윤의 빈칸을 보고 잠시 멈췄다. 도윤은 아직 모르겠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그 말이 직업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는 뜻인지, 몇 가지가 있는데 고르기 어렵다는 뜻인지 물었다. 도윤은 두 번째에 조금 더 가깝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고쳐 말했다. 몇 가지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이름만 아는 게 많아요. 선생님은 오늘 상담에 쓸 자료이니 지금 상태를 적어도 된다고 했다. 다만 다음 학기 선택 과목을 정할 때는 마감과 조건을 함께 보자고 덧붙였다.
빈칸 하나가 가리킬 수 있는 사정은 이렇게 여러 가지다. 관심이 없을 수도 있고, 관심이 너무 많을 수도 있다. 쓰고 싶은 답이 있지만 평가받을까 봐 숨겼을 수도 있다. 집에서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을 먼저 생각하느라 말을 아낄 수도 있다. 종이에 적힌 결과만 보면 이 차이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빨리 써낸 아이가 자기 이해를 끝낸 것도 아니고, 지우개를 오래 쓴 아이가 깊이 탐색한 것도 아니다. 장래희망 칸은 상담을 시작할 단서가 될 수 있지만 사람 전체를 판정하는 답안지는 아니다.
정체성이라는 말은 이 장면을 조금 넓혀 준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어떤 관계와 활동 속에서 살아가려 하는가. 직업은 그 질문의 중요한 부분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도윤은 조용한 학생이면서 음악을 세심하게 듣는 친구일 수 있다. 가족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과 낯선 일을 배워 보고 싶은 마음도 함께 가질 수 있다. 서로 다른 장소에서 다른 모습이 나온다고 해서 어느 하나를 거짓이라고 골라낼 필요는 없다. 그 모습들이 어떤 조건에서 나오는지 알아가는 일도 자기 이해에 들어간다.
물론 여러 모습이 있다는 말로 모든 갈등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준비할 시간이 겹치고 비용이 달라 실제로 하나를 골라야 할 때가 온다. 그때 필요한 것은 내 안에 숨어 있는 단 하나의 정답을 찾아내는 능력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감당할 수 있는 조건을 말하고, 선택한 뒤에도 경험을 통해 판단을 고치는 힘이 필요하다. 정체성을 완성된 명함처럼 생각하면 한 번의 변경이 실패처럼 보인다. 살아가며 조금씩 고쳐 쓰는 설명으로 생각하면 수정한 이유도 자기 이야기의 일부가 된다.
정체성 연구에서 자주 만나는 말은 탐색과 전념이다. 탐색은 다른 가능성을 알아보고 내가 해 온 선택을 살피는 과정이다. 전념은 어떤 방향이나 가치에 마음과 시간을 두는 것이다. 여기서 전념은 평생 바꿀 수 없는 계약을 뜻하지 않는다. 이번 학기에 어떤 과목을 진지하게 배워 보기로 정하는 일에도 방향을 향한 투자가 들어 있다. 반대로 직업 이름을 또렷하게 말할 수 있어도 그 일의 내용을 전혀 살펴보지 않았다면 말의 확신과 이해의 깊이는 다를 수 있다.
마샤의 정체성 지위라는 틀은 탐색과 전념을 함께 살펴보려는 고전적인 접근이다. 흔히 혼미·유실·유예·성취 같은 이름으로 소개되지만 아이의 등급표로 쓰면 설명이 거칠어진다. 특히 유예는 그냥 결정을 미룬다는 말과 같지 않다. 대안을 적극적으로 살피면서 아직 방향을 확정하지 않은 상태를 가리킨다. 그렇다고 오래 고민할수록 저절로 더 좋은 선택을 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가족과 같은 직업을 골랐다는 사실만으로 유실이라 부를 수도 없다. 그 선택에 이르기까지 무엇을 알아보고 어떤 의미를 두었는지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도윤의 빈칸에는 그 과정이 적혀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날 도윤에게 어떤 정체성 지위를 붙일 이유도 없었다. 필요한 것은 이름표가 아니라 다음 대화였다. 아직 정하지 못했다는 말 다음에, 무엇을 알고 싶은지 물을 자리가 남아 있었다.
기대를 듣되 내 목소리도 남겨 두기
저녁에 아버지가 조사서를 봤느냐고 물었을 때 도윤은 학교에 두고 왔다고만 했다. 괜히 무대 준비 얘기를 꺼냈다가 그쪽으로 진로를 정한 줄 알면 피곤해질 것 같았다. 아버지는 요즘 채용이 어렵다더라며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도윤은 그 말 뒤에 빨리 안정적인 길을 골라야 한다는 뜻이 붙어 있다고 들었다. 아버지는 도윤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자기 말이 귀찮은 줄 알았다. 둘 다 상대의 다음 문장을 혼자 먼저 만들고 있었다.
잠시 뒤 도윤은 수요일에 조금 늦는다고 말했다. 축제 준비를 도울 거라고 했다. 아버지가 그걸 직업으로 생각하느냐고 묻자 도윤은 아직 그런 건 아니라고 답했다. 한번 봐도 돼? 허락을 구하는 말처럼 들렸지만 실제로 묻고 싶은 것은 달랐다. 그 일을 해 본 다음에도 계속 모르겠다고 말해도 되는지, 흥미가 없었다고 돌아와도 헛일한 사람이 되지 않는지 알고 싶었다. 도윤은 그 말을 한꺼번에 다 설명하지 못했다. 대신 이번에는 순서를 적는 일을 해 보게 됐다고 구체적으로 말했다.
부모가 안정성을 생각하는 마음을 단순히 낡은 가치라고 치울 수는 없다. 생계를 꾸리는 어려움을 겪었거나 학비를 계산해 본 사람에게 비용과 고용은 추상적인 걱정이 아니다. 청소년에게도 생활의 조건을 아는 일은 필요하다. 다만 그 조건을 함께 검토하는 대화와, 기대에 맞는 답을 해야 관계가 편안해지는 대화는 다르다. 아이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것은 정보를 주지 않거나 마감을 없애는 일이 아니다. 이유를 듣고 현실적인 범위를 설명하면서도 당사자가 자기 판단을 말할 수 있게 하는 일에 가깝다.
이 차이를 생각할 때 참고할 만한 연구가 있다. 안·플라몽동·라텔의 연구는 프랑스계 캐나다 청소년 637명을 연 1회씩 세 차례 조사했다. 첫 조사 때 평균 나이는 14세였다. 연구진은 부모의 자율성 지지와 통제 양상이 서로 다른 집단을 구분하고, 이후 진로 탐색에서 느끼는 자율성·유능감과 진로 미결정의 관련성을 살폈다. 자율성 지지가 높은 집단은 뒤의 조사에서 자율성과 유능감이 가장 높고 미결정은 가장 낮게 보고되는 양상을 보였다. 논문 초록과 연구 정보에서 표본과 설계를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부모에게 특정 대화법을 무작위로 가르친 실험이 아니다. 자율성 지지를 늘리면 누구나 진로를 곧 정한다는 결과로 읽을 수 없고, 이 표본의 관계를 한국의 모든 가정에 그대로 옮길 수도 없다. 그래도 결정을 얼마나 빨리 내렸는지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자기 의사를 느끼는지 살펴볼 이유를 준다. 도윤에게 필요한 대화도 아버지의 걱정을 지우는 쪽보다는 걱정의 내용을 서로 알아듣는 쪽에 가까웠다. 아버지는 일단 학교에서 하는 활동인지 물었고, 도윤은 담당 선생님이 함께 있으며 정해진 시간에 끝난다고 설명했다.
진로 이야기에 기대가 섞이는 것은 집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잘하는 과목 하나로 주변이 전공을 정해 주기도 하고, 성별이나 평소 성격을 보고 어울리는 직업을 좁히기도 한다. 도윤은 조용하니까 앞에서 사람 상대하는 일은 힘들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말이 배려였을 수도 있지만 듣고 나면 자신이 시도할 수 있는 일의 목록이 조금 줄어든 듯했다. 조용한 사람도 설명하는 일을 배우고, 활발한 사람도 혼자 집중하는 일을 좋아할 수 있다. 지금 보이는 모습은 탐색을 시작할 자료이지 가능성의 출입문을 잠그는 열쇠는 아니다.
아버지는 수요일 활동 뒤에 어떤 일을 했는지 알려 달라고 했다. 도윤은 재미있으면 계속해도 되느냐고 바로 묻지 않았다. 아직은 재미있는지도 몰랐다. 대신 한번 해 보고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그 말은 아버지의 기대를 거부하는 선언도, 그대로 따르겠다는 약속도 아니었다. 기대를 듣는 일과 자기 판단을 맡겨 버리는 일 사이에는 대화할 공간이 있었다.
생각을 조금 앞으로 옮기는 경험
수요일 강당 뒤편은 도윤이 상상한 것보다 덜 근사했다. 접힌 의자가 벽을 따라 쌓여 있었고 진행표는 여러 번 고쳐져 있었다. 담당 선생님은 장비를 만지기 전에 오늘 맡을 일을 설명했다. 도윤은 친구와 종이를 보며 순서를 확인하고 바뀐 부분에 표시하기로 했다. 음악을 고르는 줄 알았는데 먼저 할 일은 사람 이름과 입장 순서를 맞추는 것이었다. 공연 하나를 좋아하는 것과 그 공연을 준비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은 같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삼십 분은 시간이 빨리 갔다. 누락된 순서를 발견하자 종이의 한 줄이 실제 사람의 움직임과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다음 삼십 분은 지루했다. 같은 구간을 다시 확인하는데 뒤쪽에서 말소리가 겹쳤다. 도윤은 소리를 다루는 일이 좋아 보인다고 생각했지만 여러 사람이 동시에 질문할 때는 쉽게 지쳤다. 그렇다고 바로 안 맞는 일이라고 결론 내리기도 어려웠다. 처음이라 일이 서툰 것인지, 이런 환경 자체가 부담스러운 것인지 아직 구분할 수 없었다.
경험은 종종 마음을 분명하게 해 주기보다 질문을 더 구체적으로 만든다. 무대 일이 좋을까라는 질문은 준비표를 정리하는 일과 현장에서 여러 요청을 처리하는 일 중 무엇이 더 맞는가로 나뉠 수 있다. 사람을 돕는 직업이 좋겠다는 생각도 설명하기, 돌보기, 기록하기, 제도를 고치기처럼 다른 활동으로 펼쳐진다. 직업 이름에 붙은 멋진 이미지가 실제 하루의 내용과 만날 때, 좋아한다는 말도 싫어한다는 말도 조금 더 정확해질 여지가 생긴다.
이런 활동을 몇 번 하면 적성을 발견한다는 보장은 없다. 도윤이 한 일은 학교에서 맡은 짧은 역할이었고 실제 직업의 노동 시간이나 임금, 훈련 과정을 대신하지 못한다. 좋아하는 일에도 반복과 평가가 있다는 것을 잠깐 본 정도였다. 그런데 그 정도의 정보도 이전에는 없었다. 도윤은 그날의 즐거운 순간과 지친 순간을 둘 다 기억하려 했다. 좋아하는 장면만 모아 꿈을 확정하지도, 서툴렀던 한 장면으로 가능성을 접지도 않기 위해서였다.
자기를 알아가는 일이 혼자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데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최근 연구에서도 다뤄졌다. 스기무라와 동료들이 2025년 학술지에 발표한 연구는 일본의 직업계 고등학교 28곳에서 모은 학생 4,264명의 자료를 분석했다. 첫 조사 참여자의 평균 나이는 약 15.8세였고, 연구는 1년 간격의 세 차례 설문으로 진행됐다. 학생이 자기 평균보다 전공 학과에 대한 소속·동일시를 높게 보고한 시점 뒤에는 다음 해 자기 정체성의 통합감도 높아지는 관련성이 나타났다. 반면 같은 분석에서 급우에 대한 동일시는 다음 해 정체성 통합감을 유의하게 예측하지 않았다. 원문은 온라인으로는 2024년에 공개됐다.
이 결과를 친구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으로 읽을 수는 없다. 연구에서 비교한 것은 특정 척도로 측정한 동일시와 그 뒤의 변화였으며, 인간관계의 모든 역할을 평가한 것이 아니다. 또한 자기 보고에 의존한 관찰 연구이고 일본 직업계 학교라는 맥락의 한계가 있다. 동아리를 하면 정체성이 완성된다거나, 도윤의 하루 체험이 효과를 냈다는 증거도 아니다. 다만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이 내가 어떤 배움과 활동에 참여하고 어디에 소속감을 느끼는가라는 물음과 떨어져 있지 않을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물론 모든 청소년이 비슷한 경험을 고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집에 일찍 돌아가 돌봄을 맡아야 하거나, 이동할 교통편이 없거나, 유료 체험의 비용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선택지가 좁은 상황에서 더 적극적으로 찾아보라고만 말하면 제약까지 개인의 의욕 문제로 바뀐다. 학교 안에서 짧게 역할을 나눠 보거나, 담당 교사에게 실제 업무를 묻거나, 이용 가능한 공공 진로 자료를 함께 읽는 식으로 지금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찾아야 한다. 경험의 값이 비싸거나 종류가 많아야 자기 이해가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빈칸 옆에 적은 다음 질문
돌아오는 길에 친구가 이제 음향 쪽으로 갈 거냐고 물었다. 도윤은 모르겠다고 했다. 아침의 모르겠다는 말과 같은 소리였지만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은 조금 달랐다. 진행표를 정리하는 것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여러 요청이 겹치면 당황했다. 음악을 좋아한다는 사실만으로 관련 직업의 하루를 안다고 할 수 없었다. 계속 알아보고 싶은지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었다. 직업을 정하지는 못했지만 오늘 한 일에 대해서는 몇 문장을 말할 수 있었다.
집에서는 아버지가 어땠느냐고 물었다. 도윤은 재미있었다고 답한 뒤 잠깐 생각하다가, 지루한 때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아버지는 그럼 별로인 거냐고 되물었다. 도윤은 그건 아니고 반복해서 확인하는 일이 많았다고 말했다. 대화가 매끄럽지는 않았다. 그래도 직업 이름을 하나 말하고 맞는지 평가받는 대신 실제로 있었던 일을 설명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자기 일에도 그런 시간이 많다고 했다. 둘의 경험이 같아진 것은 아니지만 잠깐 같은 종류의 장면을 이야기했다.
다음 날 도윤은 진로 조사서를 다시 꺼냈다. 아직 직업 이름을 넣을 자신은 없었다. 선생님이 현재 상태를 적어도 된다고 했던 말을 떠올려 탐색 중이라고 썼다. 그 옆 공책에는 다음 활동 때 진행을 맡는 선생님에게 준비 과정이 어떤지 물어보겠다고 적었다. 너무 큰 결심을 쓰면 또 지우게 될 것 같아, 질문 하나만 남겼다. 선택 과목 상담 날짜도 표시했다. 탐색을 이어가는 일과 현실의 마감을 챙기는 일은 같이 할 수 있었다.
선택이 필요한 날에는 가진 정보로 잠정적인 결정을 해야 할 수도 있다. 모든 가능성을 경험한 뒤에만 고를 수 있다면 아무도 제때 선택하기 어렵다. 그때 지금 아는 범위에서 이유를 말하고, 더 확인해야 할 부분을 남겨 두는 태도가 도움이 될 수 있다. 무엇을 정했든 다시 의문이 생기는 순간을 곧바로 실패로 여기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 반대로 불안해서 같은 생각만 되풀이하며 일상까지 힘들어질 때는 혼자 더 오래 고민하기보다 진로 담당 교사나 상담자와 막힌 부분을 나눠 볼 수 있다.
도윤이 다음 주에 같은 마음일지는 아직 모른다. 무대 준비보다 다른 활동이 더 궁금해질 수도 있고, 안정적인 생활을 바라는 마음이 더 선명해질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그 이유를 자기 말로 조금 더 설명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의 선택이 나를 전부 설명하지 않아도, 오늘 알아낸 것은 다음 선택의 재료가 될 수 있다.
조사서를 접자 눌려 있던 글씨 자국이 다시 보였다. 도윤은 종이를 구겨 버리지 않았다. 공책과 함께 가방 안쪽에 넣었다. 아직 비어 있는 칸이 있었고, 새로 적은 질문도 있었다. 둘이 같은 가방에 들어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참고 연구
- Marcia, J. E. (1966). Development and validation of ego-identity statu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3(5), 551–558. 정체성 지위 틀의 고전적 출발점. 본문은 이를 청소년 개인의 진단이나 고정된 성장 순서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 Ahn, J. S., Plamondon, A., & Ratelle, C. F. (2023; 온라인 2022). Different ways to support and thwart autonomy: Parenting profiles and adolescents’ career decision-making. Journal of Family Psychology, 37(2), 161–172. 부모 양육 양상과 진로 발달 지표의 종단적 관련성 연구.
- Sugimura, K., Hihara, S., Hatano, K., Umemura, T., & Crocetti, E. (2025; 온라인 2024). The Interplay Between Personal Identity and Social Identity Among Vocational High School Students: A Three-Wave Longitudinal Study. Journal of Youth and Adolescence, 54, 454–467. 전공 학과 및 급우에 대한 동일시를 구분한 자기 보고 종단 연구.
청소년 심리학 연재 4회입니다. 앞선 글은 「화난 줄 알았는데, 지쳐 있었다」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다음 회차는 공개 후 이어집니다.